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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8 10:39 화성(華城) 축성의 길을 걷다
김홍범 기자 netcityweb@daum.net | 탐방 | 인쇄
지난 10월 24일, 수원화성 축성 216주년을 맞아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고자 옛 포구가 있던 화성시 비봉면 구포리에서 화성행궁과 성신사 까지 25km의 구간을 걸었다.
수원화성 축성의 길은 220여 년 전 수원화성 축성시 충청도, 황해도, 강원도, 경기도, 전라도 지역에서 축성에 필요한 나무와 물자를 배로 실어와 옛 포구가 있었던 화성시 구포리 포구에서 수원화성까지 물자를 운송했던 길을 말한다.
이 길의 주요한 루트는 옛 포구가 있던 구포리에서 출발 쌍학사거리, 비봉IC, 어천저수지, 천천리마을, 수원국립산림연구원, 수원여대, 호매실교, 서둔동, 서울농대, 항미정, 서호, 여기산, 숙지산, 화서문, 화성행궁, 성신사에 이르는 25km의 길이다.
6시간에 걸쳐 걸으면서 느꼈던 수많은 감정과 220여 년 전 당시 우리 조상님들은 축성에 필요한 여러 물자를 어떻게 운반을 했고 어떠한 이야기를 했으며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을까 하는 조금의 상상력을 불어 넣어 '화성축성의길'을 써보기로 했다.
220여년 전 구포리 포구를 회상하다
이른아침 동이 트자 포구 인근에 있는 한 주막에서 주모의 부름이 들러온다.
"동이 텄어요 얼른 일어나세요!" 닭 울음소리 또한 피곤한 몸을 깨우기 바쁘다. 어제 인부들과 이곳 주막거리에서 막걸리를 마셨던 게 탈이 났는지 깨자마자 이내 뒷간으로 뛰어갔다.
볼일을 보고 나서 잠시 포구지역을 바라봤다. 고깃배들과 나무를 싫은 수송선들이 몇 척 정박해 있고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바다가 잔잔히 물결을 요동치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서야 한다. 해가 뜨기 전 출발해야 화성 축성 공사현장에 해질녘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구 인근에는 나무를 산적해 놓은 보관소가 있다. 여러 지역에서 배를 실어와 이곳에 적재해 놓은 것인데 지금은 꽤 많게 쌓여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요 운송로 구간에 있는 교각 하나가 보수공사중이여서 목재가 많이 쌓여있다. 어제는 오늘 실어 나를 목재를 수레에 옮긴 작업을 해 놓은바 있다.
또 이곳엔 수레를 끌 소와 말 등이 꽤 있는데 소를 수레가 있는 이곳으로 끌고 와야 했다.
아침부터 주막일대가 분주하다. 많은 사람들이 물자를 나르기 위해 수레에 나무를 싣는가 하면 옹기종기 모여 국밥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사람, 수레의 바퀴를 보며 하나하나 점검을 하는 사람,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맡은 임무를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였다.
동트는 아침 7시경 목재를 실은 수레를 끌고 천천히 걷기를 시작했다. 뒤를 이어 10여개의 수레가 꼬리를 길게 이으며 천천히 따라오기 시작한다. 수원까지 거리는 20여 km 지금부터 열심히 가야 화성공사 인근 주막에서 막걸리 한잔 할 수 있을 터였다.
잠시 후 교차로가 보인다. 쌍학 사거리에는 서해 어촌들을 이어주는 작은 길과 화성축성의 길로 향하는 큰길이 나있다. 천천히 화성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간간히 보이는 농가에서 구수한 냄새가 진동한다. 이른 아침부터 아침을 하는 듯, 초가집 지붕위에서 연기를 한 아름 뿜어낸다.
길가엔 농가들이 굉장히 많다. 인근에 고려시대 부터 군부대가 인근에 주둔해 있고, 주요한 곡창지대로 인해 농부들이 굉장히 많고 또한 화성을 축성하면서 또 큰 저수지도 여럿 만든다는 소문이 나돈다.
그만큼 이 지역은 농업에 있어서 굉장히 활성화 되는 지역 중의 한곳이었다. 어촌리 마을에 이르자 운송로 인근에 있는 지역 주민들은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아침부터 흙먼지 날리며 수레를 끄는 소의 변이나 수레 굴러가는 소리로 수년째 소음공해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불편함을 겪고 있는 일을 임금님은 이미 알고 있었고 최근 들어 이 지역 사람들에게 많은 혜택을 줄 거라는 소문까지 들린다.
어천저수지 인근에 다리를 한두 개 건너야 한다. 이 다리는 수년전 다리를 크고 튼튼하게 만들었는데 최근 들어 많은 짐을 실은 수레의 무게를 못 이겨 보수공사가 한참이다.
인근에는 아침부터 아이들이 나와 가재를 잡으며 물장구치며 놀고 있고 아침부터 빨래방망이를 들고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모습도 보인다.
정조의 호위부대인 장용영부대
어천저수지를 지나면서 유독 많은 병사들이 보인다. 왜일까?
인근에 수만의 장용영군대가 주둔해 있는 것인데 이 지역엔 옛날부터 나라의 주력 부대가 항상 주둔해 있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주요한 곡창지대이면서도 군사상 중요한 요충지인 것이다.
장용영부대는 1788년 장용영으로 개칭한 뒤 1793년 기존 5군영보다 더 큰 비중으로 장용영 내영과 장용영 외영으로 확대 편제되었다고 한다. 내영은 한양도성에 주둔시키고, 외영은 화성 축성(1796)이 완료되면 그곳으로 이동해 주둔하게 된다고 한다.
1795년엔 다른 군영의 군대까지 흡수해 5사 23초의 편제를 갖추었고 이를 장용사(장용영 대장)가 이를 지휘하였다.
멀리 칠보산이 점점 다가오면서 점심시간에 맞춰 칠보고을에 다다랄 수 있었다. 이곳은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인데 이른 아침부터 나선 일꾼들은 이곳에서 주로 점심을 먹는다. 화성축성의 인부들을 위한 지정된 주막이 있으며, 지정된 주막에서 먹으면 저렴한 가격으로 점심끼니를 때울 수 있다. 30여분 막걸리와 국밥을 먹은 일행은 다시 길을 재촉해야 했다.
지금부터 열심히 가야 장안문 인근 주막거리에서 막걸리를 한잔 할 수 있을터. 길을 다시 재촉했다.
칠보산 인근에 이르면 나지막한 언덕을 넘어야 한다. 운송로에서도 가장 힘든 코스이다. 가을이 깊어지는 10월 단풍으로 물든 칠보산이 어느 때보다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작은 언덕을 오를 즈음 일행의 한 수레에서 일이 터지고 만다. 잘 굴러가던 수레바퀴가 떨어져 나간 것이다. 수레엔 수리할 수 있는 연장과 여분의 바퀴를 항상 싣고 다닌다.
이런 일을 겪었을 때 신속히 수리하기 위해서다. 30여분의 지체 속에 바퀴를 교체해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채석장이었던 백로의 고향 여기산
울긋불긋 단풍이 들은 칠보산의 언덕을 넘어가면 평탄한 길이 이어져 속도를 더 낼 수 있다. 평탄한 길에 저 멀리 목적지인 팔달산이 보이고, 여기산과 숙지산까지 보인다.
여기산에 다다르자 오후 3시경 이른 아침 7시부터 시작해 여기까지 오는데 8시간이 걸렸다.
여기산엔 채석장이 있다.
이 주변엔 돌 다듬는 소리가 나지막한 산 주변에 울러 퍼진다. 여기산 채석장 인근에 있는 부석소에서도 축성에 필요한 석재들이 산적해 있었다.
목재를 주로 나르는 수레에 비해 석재를 나르는 수레는 더욱 튼튼하고 또한 두 마리의 황소가 수레를 끌게 된다. 그 힘센 황소라도 석재를 나르는 덴 2마리가 필요할 정도로 많은 힘을 필요로 한 것이다. 특히 그러한 거대한 석재를 쉽게 들어 올리는 장치(거중기)도 만들었다고 하니 그 거대한 화성을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축성할 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참 기가 찰 노릇이다.
여기산 인근엔 특히 백로가 많이 살고 있다. 언제부터 살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둔전(국가가 운영했던 논)이 많고 먹을 것이 풍부해 아주 오래전부터 서식하게 되었나 보다. 채석장에서 나오는 일행과 함루해 숙지산 방향으로 향했다. 여기산에서 숙지산까지의 거리는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숙지산에도 부석소가 2군데 있다. 그쪽의 일행과 합치면 꽤 길다란 행렬이 될 것이다. 또한 숙지산에서 화성까지 거리는 한시간 정도 가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오후 7시 숙지산을 거쳐 드디어 목적지인 화서문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하루종일 운송하느라 힘든 몸을 이끌고 일행과 함께 인근에 있는 주막거리로 향했다.
화성을 축성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주막거리는 장안문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한양에서 오는 사람들과 남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주로 거쳐서 가는 길에 있어 사람들로 항상 북적거린다. 화성에 축성에 참여하고 있는 인원은 대략 수천명에 이른다.
그 중에 한 무리는 팔달문 인근의 주막거리로 향하는가 하면 또 한 무리는 이곳 장안문 인근 주막거리에 모이게 된다. 운송을 끝내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함께 인근 주막에서 닭고기와 시원한 막걸리를 한잔 하면서 힘들었던 하루를 보내본다.
곧 화성이 완공되면 일했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낙성연을 벌인다고 하니 그 시기가 기다려진다.
다시 202년 현실로 돌아와서
2012년 104만의 거대한 도시로 성장한 수원, 그 시작은 '화성축성의길' 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수원의 형성 시기는 언제부터였을까?
모수국부터 시작한다는 말도 많지만 실제로 우리가 사는 이 지역에서 살게 된 이유는 수원화성이 축성한 시기부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축성의 시기를 여러물자를 처음으로 운송했던 '화성축성의길'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화성을 축성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흘렸던 땀들,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화성과, 축성하면서 이런저런 수많은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있어서 더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이 석재와 목재를 나르면서 하나하나 만들었던 화성 이것이 지금의 수원이 있게 된 것이고, 오늘 걸었던 조상님들의 숨결이 남아있는 그 길을 걸으면서 화성축성의 길의 의미 또한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걸었던 25km의 길을 걸으며 조상님들의 땀과 숨결을 느낄 수 있었고, 여기산과 숙지산엔 아직도 그 흔적들이 돌 표면위에 남아 있었다. 지금도 여기산과 숙지산 그리고 팔달산의 채석장소에 가면 돌 깨는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화성축성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수원에서 50-2, 50-4, 50-5번 버스를 타고 화성시 비봉면 쌍학사거리에서 내려 동학천을 따라 서해안고속도로 까지 가면 그곳이 바로 옛 포구가 있던 자리이다.
지금은 바닷물을 막아 넓은 평야지대가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여기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 옛 포구지역이었다. 주요한 축성에 필요한 목재와 물자를 이곳을 통해 들어왔으며 당시 이곳에도 주막거리가 있었다고 한다.
옛 구포리 포구지역에서 시작해서 도로를 따라 칠보마을까지 올라온 후 칠보산을 끼고 국림산림과학연구원을 거쳐 수원여대, 구운동행정타운, 여기산, 숙지산, 화서문까지 걸어오면 된다. 볼거리 풍부한 '화성축성의 길' 25km의 걷기 구간엔 조상님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하면 아름다운 자연풍경도 접해볼 수 있다.
여기산의 정상으로 오르면 커다란 비석이 두 개 서있고 안쪽으로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심상치 않는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다. 그 바위에서 220여 년 전 돌 뜨던 흔적을 찾아보자. 또한 숙지산에도 돌 뜨던 장소가 2군데 있다. 담배인삼공사 맞은편에 숙지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는데 50m 정도 산을 오르면 거대한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그 바위 오른쪽 윗부분에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다른 한곳은 숙지산 정상 쉼터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을 따라 10여분 걸어 내려가면 산 중턱에 거대한 바위가 있는 장소가 있다. 그 곳에도 돌 뜨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아름다운 자연풍경이 많은 '화성축성의 길'은 특히 칠보산의 가을 정취가 매우 아름답다. 수원에서 바라본 칠보산과 화성시에서 바라본 칠보산은 전혀 색다른 느낌을 준다.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칠보산의 뒷모습도 볼만하며 칠보산을 둘러볼 수 있는 둘레길도 걸을만하다. 화성시와 수원시의 경계길을 넘어가면 국립산림연구원을 끼고 걷는 구간이 있는데 그 길 또한 아름답다.
오래된 정원을 보는듯한 서울대농대부지 인근 주택가들의 모습도 꽤 운치가 있으며 시간이 더 된다면 서울대농대부지의 안쪽으로 들어가 오래된 정원도 감상해 보자. 또한 인근 넝쿨 잎에 덮여있는 노후화된 건물들이 꽤 괜찮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아름다운 서호와 여기산 200여년전 형성된 축만제 풍경은 수원에서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손꼽는 곳이다. 특히 여기산과 더불어 서호천 풍경 또한 아름다운데 인근 아름드리나무와 더불어 때 묻지l 않은 자연을 만낄할 수 있다. 여기산에도 산을 둘러볼 수 있는 둘레길이 있는데 작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산림이 울창한 숲길을 만나볼 수 있다. 여기산의 둘레길은 한 바퀴 도는데 20여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작은 오솔길의 이 길을 걷다보면 옛 토성을 만나볼 수 있으며, 인근엔 우장춘 박사의 묘소와 우리나라 농업 발전을 위해 노력한 많은 위인들의 묘가 여기산에 묘장되어 있다. 또한 팔달산 중턱에 있는 성신사는 화성신을 모시는 곳이다. 화성을 수호하는 화성신께 감사의 마음을 가져보는 것도 의미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다.
수원엔 이런 옛 조상님들의 숨결이 깃든 대표적인 길이 두개 있다. 하나는 정조대왕이 옛 융.건릉을 다녔던 '능행차길'과, 수원화성을 축성했던 '화성축성의 길'이 있다. 능행차길에는 정신적인 철학과 효심이 깃든 길이 있는가 하면, 축성의 길에는 백성들의 땀과 이야기가 깃들여 있다.
능행차길과 더불어 화성 축성의 길에도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지역 사람으로서 필요할 듯 보이고 그러한 의미를 담아 한번 화성축성의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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