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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光敎山)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이 시대 우리의 임무는?
미학사지 절터 약수터에서 본 풍경 경기도 남부권 일원을 포용하면서 경기산하의 모체라 할 수 있는 한남정맥은 경기도의 주요한 산맥으로 경기수부지역인 수원을 비롯한 용인, 광주, 과천, 안양, 의왕, 부천, 시흥, 김포, 화성, 오산, 평택, 안성 일원을 포용하고 있다.
경기도청이 서울에 있었던 1960년대까지는 삼각산이 경기도의 진산으로 자리를 지켰을지 모르나 이젠 광교산(해발 582m)이 경기도의 진산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진산이라는 단어는 원래는 풍수지리적인 용어로 하나의 산 자체만으로는 진산이란 칭호를 받지 못한다. 풍수에서 말하는 진산은 도읍을 정함에 있어 공간 배치에서 그 주된 역할을 하는 산으로 우리는 진산 또는 주산이라고 한다. 옛적 제단으로 쓰였던 창성사지 절터 그러므로 경기남부 주요 도시들을 포용하는 한남정맥의 주봉인 광교산은 경기수부도시 수원과 용인, 성남, 의왕등 경기남부 주요 도시를 이어주는 현재의 경기도 중부권 산하의 상징이자 진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광교산이 경기도의 진산이라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버팀목 역할도 광교산은 하고 있다는데 있다.
임진왜란의 상처가 채 가시기 전 나라가 전란을 겪어야 했던 병자호란 시기 김준용 장군에 의해 광교산 대첩과 같은 나라의 고난과 함께 해온 민족의 성산이자 경기도의 주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수원과, 화성시, 오산시, 평택시까지 물줄기로 이어주는 황구지천의 근원을 이루는 수원천의 물주기 또한 광교산을 발원지로 하고 있으며 광교산 일대는 여든아홉 개의 절과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질 정도로 영험한 산이기도 하다. 미학사지 절터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의 전투에서 회군하는 길에 이곳 광악산(광교산의 옛 이름) 행궁에서 군사들을 위로할 때 산에서 광채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여겨 그때부터 광교산(光敎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는 이곳엔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89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조선 말기에 발간된 '수원군읍지'에도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지금에 와서 광교산에 있는 89개의 암자를 모두 찾지는 못하겠지만 아직까지 흔적이 진하게 남아있는 광교산의 대표적인 절터인 미학사지(절터약수터)와, 고려 창성사지는 지금도 그 흔적으로 봐서도 암자의 규모를 넘어선 절터임을 알 수 있었다.
광교산은 지금의 우리에게 있어서도 수천년 우리민족의 문화와 생활 속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불교문화의 근간을 이뤘던 산이자, 나라의 위기시 전란으로 부터 이겨낸 나라의 고난과 함께해온 민족의 성산이며, 다양한 자연생태의 보고이다.
수원화성이라는 문화와 지금의 수원의 태생적 동기를 만들어 주었던 근원지로서의 광교산(光敎山)은 경기도의 진산이라 칭할 수밖에 없는, 경기도청이 수원에 또 광교신도시에 올수밖에 없는 역사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름모를 절터 지금도 광교산 물줄기를 따라 오르다보면 곳곳에 절터로 추정되는 터나 기와, 토기, 자기 조각 등이 널려져 있으며, 주춧돌과 기단, 석축, 우물터, 영험이 있는 바위 등 수도 없이 많은 흔적들이 남아있다.
광교산에 있는 절터를 찾아가 직접보고 느낀 광교산은 우리에게 있어 많은 것을 깨우치게 해주었다. 절터를 찾아가면서 만나본 수많은 조상의 흔적과 자연의 신비함, 수원의 근간을 이루었던 수원천 발원지 또한 우리를 감탄시키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광교산에 대해서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는 이러한 무한한 잠재적인 콘텐츠가 광교산엔 풍성하게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콘텐츠를 제대로 알고 발굴할 때 지역의 문화는 풍성해지고 지역의 문화적 경쟁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이유이며 광교산이 빛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홍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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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光敎山) 국사들이 오르던 길을 걷다
두 명의 국사를 배출했던 광교산의 창성사지와 서봉사지를 이은 길
지역의 길을 걷다보면 지역의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평소엔 그냥 지나쳐버릴 곳일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고 또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지역으로서도 값진 명품 길을 만들 수 있다.
광교산 '국사의 길'은 고려시대 두 명의 국사를 배출했던 광교산에 있는 창성사지(진각국사:진각국사 대각원조탑비 보물 제14호)와 서봉사지(현오국사:현오국사탑비 보물 제9호)를 이어주는 길로 우리는 이 길을 '국사의 길' 또는 '깨달음의 길'이라 이름을 붙였다.
처음 산에 대한 매력을 일깨워줬던 광교산은 그 산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너무나 값진 것이었다. 광교산에는 다양한 생태계는 물론, 수원천 발원지에 대한 물길 탄생의 신비, 나라의 고난과 함께해온 민족의 성산이며, 잔잔한 숲 속에서 잠들어 있는 불교국가인 고려에 대해서도 새삼 우리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남달랐다.
또한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그러한 점들을 항상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기존 질서의 틀에서 벗어나 생각하면 항상 창조적인 콘텐츠가 발생하며 그러한 것이야 말로 지역을 변화시키고 또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긍정적이고 무한의 잠재적인 에너지였다.
신비한 기운이 있는 창성사지 가는 길
지난 2일(토) 10시부터 수원시 상광교 버스종점에서 걷기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항상 사람을 설레게 만든다. 이러한 길은 자신에게도 미지의 영역으로 새로운 것을 본다는 것은 곧 생각도 느낌도 새로움이 들어오는 것과 같은 신선함을 주기 때문이다.
광교산 '국사의 길'의 주요한 루트는 상광교 종점을 시작으로 창성사지터->종루봉(비로봉)->김준용장군전승비->양지재->서봉사지에 이르는 길로 자연의 깊은 모습과 정신적인 내면의 모습까지 갖춘 지역의 새로운 길이었다.
광교산 안내소에서 바로 창성사지 방향으로 향했다. 창성사지 가는 길은 등산객이 드물게 오르는 길로 무엇보다 이 길은 여름이 되면 깊은 숲을 만끽 할 수 있으며 곳곳에 큰 바위와 계곡은 정신수양을 하기에도 좋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전국의 산속에 있는 사찰을 찾아보면 이렇게 계곡의 물주기를 타고 오르는 곳에 절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창성사지와 서봉사지도 그러했다.
길을 걸으면 계곡 물줄기를 왔다갔다 건너는 듯 했으며, 그 길은 꼭 한 단계 한 단계 계단을 오르듯 새로운 신성한 영역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줄곧 받게 된다. 특히 창성사지를 오르는 길에는 그러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가는 길마다 큰 절을 하는듯한 나무가 있는가 하면, 악귀가 오르는 것을 막는듯한 기괴한 나무의 모습들이 이 길이 보통길이 아님을 알게 해주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도 마지막 물길을 건너면 신기하게도 이러한 모습들은 자취를 감추고 평온함이 마음속에 밀려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 물길을 건너면 곳곳에 있는 영험함이 있는 계곡의 큰 바위들을 유난히 많이 만나게 된다.
당시 모습을 느끼고자 잠시 큰 바위위에 올라 풍경을 잠시 바라보노라면 불교국가인 고려시대 정신수양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계곡을 따라 잔잔히 들려오는 목탁의 소리는 계곡의 물소리와 더불어 그 내면의 깊이를 더하고, 곳곳에 묻어있는 그 숨결들은 수백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우리의 시선을 잔잔히 이끌어 주고 있었다.
불교는 알다시피 고려인의 정신적인 사상과 다양한 예술에 이르기 까지 고려인의 삶 깊은 곳까지 자리 잡고 있는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적인 문화였으며, 지금도 그 피를 이어받은 현대인에 있어 우리의 생활이나 내면 깊은 곳에서도 불교문화의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유난히 우리 민족에게는 종교분쟁과 같은 종교간의 다툼이 없는 이유도 이런 내면에서 흐르는 우리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고도의 정신문화가 흐르고 있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조상들은 도덕과 윤리로 수천년을 나라를 이루고 이어왔으며, 그 정신이야 말로 국가를 오랫동안 지탱하고 종교를 화합할 수 있는 우리 고유의 정신 문화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도 창성사지 길을 오르다 보면 곳곳에서 절터와 같은 평평한 흔적과 도자기나 기와의 조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수백년이 세월이 흘러도 그러한 흔적을 느낄 수 있는건 아마도 광교산의 자연은 이곳에 위대한 정신문화가 깃들여 있다는 걸 지금의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광교산 안내소에서 폭포농원 쪽 물길을 따라 걷기를 시작한지 30여분이 흐른 후 우리는 첫 번째 지점인 창성사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창성사 절터 옛적에는 제단이 있었던 곳이다. 700년의 역사를 가진 창성사지
수원시 향토유적 제4호이기도 한 창성사지는 수원시 상광교동 산41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체 면적으로는 1650㎡ 정도의 크기고 수풀이 우거진 그곳엔 장대석과, 기단석, 주초석 등을 지금도 발견할 수 있다.
창성사지는 고려 말의 국사 화엄종사였던 명승인 진각국사(1305~1382)의 사리탑과 함께 건립된 대각원조탑비(보물 제14호)가 이곳에 있었으며 지금은 화홍문에서 삼일상고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옮겨져 있다.
진각국사 대각원조탑비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되고 1965년 창성사에서 화홍문 근처로 옮겨왔다. 비문에는 진각국사가 13세에 입문한 뒤 여러 절을 다니며 수행하고 부석사를 중수하는 등 소백산에서 76세에 입적하기까지의 행적이 실려있다. 입적한 다음 해인 우왕 12년(1386) 광교산 창성사 경내에 이 비가 세워졌다.
창성사지를 오르는 내내 느꼈던 그 느낌들은 이곳에서 보물 제14호로 지정된 대각원조탑비를 볼 수 없었던 게 아쉬움을 남겼다. 좁은 나무 창살에 갇혀 왜 그곳으로 옮겨졌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아쉬움을 남기는 건 이곳을 오르며 느꼈던 그러한 감정들을 이어주는 그 곳에 우리의 정신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각원조탑비를 다시 이곳으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물은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빛을 더 뽐낼 수 있으며 정조의 정신철학과 효 사상과 함께 대각원조탑비는 지역의 정식적인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것이야 말로 지역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고 세상에 우리의 정신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알다시피 불교국가인 고려에서는 고승을 왕사(왕의 스승)와 국사(국가의 스승)로 임명함으로써 그들의 신앙을 표현했다. 그리고 윤리와 도덕, 정신적인 철학의 가장 위에 있는 국사를 둠으로써 이러한 제도를 통해 대부분이 불교도였던 고려의 백성의 지지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안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
국가의 스승이 있었던 창성사지는 예전에도 2~3번 정도 올랐던 곳이다. 그러나 이날은 더욱더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그 흔적을 찾아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래된 우물터들과 기와와 같은 조각들, 잔잔히 흐르는 공기의 흐름도 어느 한곳을 가리키는듯한 기운을 받았다. 그곳은 광교산의 줄기와 절터가 한눈에 보이는 용인 서봉사 방향의 좌측의 산기슭으로 그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소리와 위치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며, 그러한 느낌은 "바로 이곳에 진각국사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었다.
단정 짓지는 못한다. 그러나 모든 만물과 위치엔 그 기운이 있으며 그 기운은 공기의 흐름을 타고 이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창성사지를 올라 이곳에서 앉아 잠시 이런저런 생각과 느낌을 간직한 채 우리는 곧 수원시와 용인시의 경계를 넘어 용인 서봉사지로 향했다. 창성사지에서 서봉사지로 가는 길은 중간에 종루봉(비로봉)을 올라 양지재를 거쳐 계곡을 타고 내려가 한 시간 정도 걸어 내려가면 서봉사지에 도착할 수 있다.
창성사지와 서봉사지를 이은 이 길은 무엇보다 광교산의 절경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으며 계곡의 물길을 따라 내려가는 깊은 계곡의 길은 한 겨울에도 감탄사가 절로 나게 만들었다.
정신문화를 이루었던 우리의 조상들은 그러한 길을 걸으며 생각도 더욱 풍부해지고 어떠한 정신적인 깨달음도 있을 터였다. 광교산과 같은 아름다운 경치와 더불어 자연과 조화를 이룬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길을 걸음으로써 정신문화를 더욱 발전시켜왔는지도 모른다. 용인 서봉사지를 가다
창성사지에서 광교산을 넘어 걷기를 시작한지 한 시간의 시간이 흐른 후 우리는 곧 용인시 수지구 신본동에 위치한 서봉사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서봉사지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사찰이자 조선 태종 때 천태종의 자복사(국가의 복을 비는 사찰)로 지정되었던 사찰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느낀 감정은 창성사지와는 사뭇 다른 세계가 보였다. 규모면에서나 또 지형으로서도 창성사지와 다른 서봉사지는 계곡의 물줄기 또한 이곳의 옛 규모를 가늠할 정도로 큰 기운이 느껴졌으며 조선 태종 때 천태종은 이곳에서 국가의 복을 빌어 국가의 번영을 기원하기도 했었다.
우리는 이곳을 둘러보며 여러 흔적들을 찾았고 그 규모면에서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잠시 이곳에 앉아 당시의 시대로 올라가보기로 했다. 후백제(892~936)시대 시기는 6월에서 8월 사이 구름이 낮게 깔리는 해질녘에 왕건은 전투를 치르고 이곳에서 군사들과 함께 음식을 함께 먹으며 군사들을 위로했다.
그리고 잠시 광교산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지다 광교산 뒤로 펼쳐지는 빛 오름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한줄기 빛 오름 현상을 보고 영험함이 있는 이 산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이라 여겨 크게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그는 산의 광채가 하늘로 솟아오른다 하여 광교산(光敎山)이라 부르며 지명을 남긴다. 그러한 깨달음이 있었던 광교산엔 그 이후 두 명의 국사를 배출했던 것은 물론 89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질 정도로 불교의 성지를 이루며 지명은 1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어지게 된다.
서봉사지에서 내려오는 창건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이곳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임진왜란 때 절에서 떠내려 오는 쌀뜨물이 10리나 흘러내려와 왜적이 물을 따라 올라가서 절을 불태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곳에 있는 보불 제9호로 지정된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는 고려 명종 15년(1185)에 세워진 탑으로 현오국사의 행적을 후대에 알리고자 만들어졌다. 이 비문엔 15세에 불일사에서 승려가 된 후 부석사의 주지를 거쳐 명종 8년(1178) 53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이 때 왕은 크게 슬퍼하여 국사로 삼고 시호를 현오라 한 뒤 동림산 기슭에서 화장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곳을 방문한 등산객들은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듯 곳곳에 나무와 돌로 표시해 뒀으며 여러 탑이 있었던 자리엔 차곡차곡 정성스레 돌을 쌓아 이곳에서 현오국사를 기리고 있었다.
수원의 상광교 종점에서 시작된 길은 창성사지를 거쳐 광교산을 넘어 이곳 서봉사지에서 마무리가 된다. 역사적으로도 지역에 의미가 있는, 광교산 길은, 문화 콘텐츠 발굴이 더욱 소중해지는 이때, 지역으로서도 소중하며 그 문화적 콘텐츠는 관광자원으로서도 무엇보다 값지다.
도덕과 윤리로 나라를 이루었던 옛 선조들의 정신을 수원화성과 연계하여 발굴한다면 세계인에게 있어서도 우리의 정신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광교산은 고려시대만 해도 89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질정도로 영험했던 산으로 지금도 물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곳곳에 절터와 같은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미학사지(절터약수터)와 창성사지는 물론 용인 서봉사지엔 지금도 우물터는 물론 탑신 기와의 조각 등이 곳곳에 널려져 있었다.
무엇보다 이 길을 주목하는 이유는 연간 650만명이 찾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광교산에 이런 역사적인 문화와 정신문화를 더한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으며 이러한 관광자원은 지역경제를 활성화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지역의 일자리 창출과 이미지에도 많은 보탬이 될 수 있다는데 있다.
또한 나아가 화홍문 옆에 있는 진각국사 대각원조탑비를 지금의 창성사지인 제자리로 옮기고 문화재보호구역 지정은 물론 나아가 사찰까지 복원된다면 전국적인 관광지는 물론, 경기도 지역의 정체성을 더욱 높이고 세계인에게 있어 우리의 정신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보물은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등 불교계의 여러 계파를 넘어 문화재청은 물론 지역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국가의 스승이 있었던 두 국사를 이으는 길에 우리 조상들로부터 전해지는 그러한 정신문화를 이어 진각국사 대각원조탑비를 제자리로 옮기고 문화재보호구역 지정은 물론 두 곳의 사찰복원과 함께 길을 이어줌으로써 다양한 콘텐츠를 발굴하고 남겨놔야 미래엔 더욱 값진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것이야 말로 후대에도 소중한 걸 남겨줄 수 있고 우리의 정신문화를 세계인에게 알려줄 수 있는 지금시대의 우리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김홍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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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래 전
88
인기
이번 주 광교산 단풍 보러 갈까
인류사에서 절대로 무시 못하는 수원의 상징성, 가을이 쏟아지는 광교산에서 가을을 느껴보세요
울긋불긋 가을이 쏟아지는 듯 요즘 산과 들녘엔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살이 통통 오른 채소의 모습은 농부를 웃음 짓게 하고 추수가 한창인 들녘은 황금바다를 보는 듯, 보는 이로 하여금 풍요로운 가을의 들녘을 느끼게 한다. 오는 주말부터는 수원지역에도 가을 단풍이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가까운 광교산을 찾아 가족과 함께 가을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한해 600만이 찾는 광교산은 등산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다. 등산 코스도 많아 반딧불이 화장실부터 시작되는 가장 긴 코스는 주말 아침이면 등산을 하려는 전문 등산객들로 하여금 북새통을 이룬다. 반딧불이 화장실부터 시작되는 코스와는 달리 상광교 종점부터 시작되는 코스는 가족단위와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
그 구간이 완만한 코스로 풍경이 아름답고 가을의 단풍을 구경하기에 더 없이 좋다. 천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광교산은 고려 초기부터 그 역사를 함께해왔다. 928년 태조 왕건에 의해 명명된 광교산의 이름과 고려 초기부터 있었던 89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 사찰인 창성사가 200여 년 전까지 있었으며, 창성사 진각국사비가 보물로 지정된 의미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10만 군대를 무찌른 김준용장군전승지도 광교산에 있다. 지네절터에서 바라본 김준용장군정승지는 그 지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호국의 상징으로 가슴을 요동치게 만든다. 절터약수터 또한 인기가 많다. 미약사, 또는 미학사로 불리던 아름다운 절이 이곳에 있었으며 단풍의 풍경과 절터 그리고 억새밭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넉넉하게 만든다.
'수원(水原)'은 지명에 나타나 있듯 물이 풍부한 곳이다. 역사 속의 지명 역시 이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삼한시대 마한 54개국 중 하나인 모수국, 삼국사기에는 매홀로 표기돼 있다. 또한 수성군, 고려시대 초기 태조 23년엔 수주로 승격된다. 역사를 보듯 수원에서 발원지의 의미는 남다르다. 지역의 역사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수원천 발원지를 찾아 지역의 역사를 알아보는 것도 남다른 광교산 여행이 될 수 있다.
광교산에 위치한 풍요로운 농촌의 풍경도 가을의 깊이를 더한다. 추수가 한창인 들녘은 어렸을 적 추억을 머금게 하고, 통통 오른 배추의 모습은 풍요로운 가을의 느낌을 더욱 깊게 만든다.
올해 초 조성된 광교저수지에 위치한 광교마루길도 가볼만 하다. 단풍의 풍경과 수변의 풍경이 조화를 이루며 그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지금은 많은 인기를 얻으며 지역의 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광교산 단풍은 이번 주말을 시작으로 다음 주까지 절정을 보일 전망이다.
광교산 가는 길은 주말엔 차가 많이 밀리는 관계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가는 방법은 수원역에서 13번 버스나 13-3번을 이용하면 된다.
김홍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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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래 전
104
인기
'수원갈비'에는 이런 역사가 있네
수원갈비가 유명한 이유가 다 있다
수원에서 1박 2일을 체험관광을 하고자 한다면 꼭 둘러볼 곳이 있다. 바로 수원갈비를 맛볼 수 있는 수원갈비 전문점들인데 수원엔 타 어느 지역 보다 수원갈비의 참맛을 깊게 알아볼 수 있는 음식점들이 무수히 많다.
수원갈비의 원조인 화춘옥을 비롯하여 삼부자갈비, 본수원갈비, 가보정갈비, 연포갈비, 보신갈비, 송풍가든, 화성숯불갈비 등이 유명하며 인계초석거리 부근엔 수원갈비거리가 형성될 정도로 수원갈비 전문점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도 있다.
일제 말기 장지동에 살던 사람들이 그 곳에 수원비행장이 생기자 집단으로 옮겨 새말(신촌)에 우시장이 새롭게 형성되었는데 원래 전국적으로 유명한 우시장은 수원면 북수리(북수동) 지역에 있었다고 한다.
당시 전국엔 655개의 우시장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수원 우시장은 1년 거래량이 2만두 이상일 정도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이름난 곳이었다고 한다.
당시 수원의 우시장이 이렇게 유명한 이유는 정조시대로 올라가게 된다. 새도시 육성정책으로 인해 화성을 축성하고 수원을 자립할 수 있도록 둔전을 경영하는가 하면 농민들에게는 농사에 지을 종자와 소를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둔전의 한장면(수원화성박물관) 화성축성 당시 수레를 끄는 소들이 많이 필요로 했는데 화성 성역에 필요한 수레소는 경기지방에서 309마리, 호서지방에서 50마리, 관동지방에서 80마리, 해서지방에서 167마리로 모두 608마리였으며 그밖에 소 80마리와 말 252마리가 더 소요됐다고 한다.
화성축성이 완료되고 688마리의 많은 소들은, 지역 농민이 이곳에서 터전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일부는 농민들에게 또 일부는 둔전에 이용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정조는 수확기엔 수확의 절반을 거둬들이고, 소는 잘 키워 3년에 한 마리씩 갚도록 했는데 정조시대 그런 정책이 세월이 지나 지역에서 소가 점차 늘어나게 되고, 소를 팔 장소를 필요로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우시장이 형성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월이 흘러 일제감정기 시대인 1918년 일제 총독부가 실시했던 조사에 따르면 수원 우시장에서 한 해 거래되는 소가 2만여 마리로 거래됐을 정도로 당시 수원우시장은 전국의 3대 규모였다고 한다.
특히 성황을 이뤘던 곳이 다름 아닌 매향여중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 우시장 옛 수원 사진 1920년경에는 수원우시장의 규모는 3000여 평에 이르렀고 화성 성안에서도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후 해방이 되고 1960년대 들어오기 까지 우시장은 지금의 영화동으로 이전하게 되는데 영화동 우시장의 명성은 그 이전보다 더욱 커졌다고 한다.
1960년대 1번국도가 지나가는 영화동 우시장의 규모는 한해 2만 4천여마리의 소가 거래돼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할 정도로 크게 성장을 하지만 수원의 도시화와 농촌의 기계화가 서서히 진행되면서 그에 따라 1978년도엔 곡반정동(신촌) 지역으로 이전하게 되고 1996년에는 우시장이 폐쇄되면서 수원우시장은 조용히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200여 년간 이어졌던 우시장의 명성은 지금은 수원갈비가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러한 많은 소가 있는 지역에서는 음식에 필요한 소를 얻기 쉬워 자연스럽게 먹거리 문화 또한 풍부해 진다.
수원에서 국밥이나 갈비탕, 수원왕갈비가 유명한 이유는 정조때 부터 우시장의 명성이 음식문화와 섞여 자연스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계속 전해져 오고 있던 것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수원갈비의 유래 수원갈비는 그동안 입에서 입으로 맛이 전해지고 각종 매스컴을 타면서 전 국민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다.
수원갈비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는 우선 재료를 쓸 한우갈비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요인 이였고, 1940년경 지금의 영동시장 싸전거리엔 화춘제과를 경영했던 이귀성씨가 해방이 되면서 영동에 2층 목조건물을 사서 '화춘옥' 이란 간판을 내걸고 장사를 시작한 것이 시초다.
당시 40여세였던 이씨는 이곳이 시장 안이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고 성안 우시장이 가깝다는 것에 착안, 음식장사의 경험도 없이 먼저 해장국 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60년대 유명했던 화춘옥 이후 화춘옥 해장국은 다른 집과는 달리 소갈비를 푸짐하게 넣어 주었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고 도처에서 손님들이 모여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비싼 갈비를 넣어주다 보니 해장국의 질은 좋았지만 장기적인 면에서 이익에 문제가 발생하자 이에 갈비에다 양념을 넣고 무쳐서 재어 놓은 다음 맛있는 갈비의 맛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양념갈비를 구워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숯불에 구운 이 갈비는 그 맛이 일품이어서 단연 인기품목으로 떠올랐고, 화춘옥 갈비는 갈비대가 크고 양이 많은 것이 특징이어서 다른 음식에서는 이익이 남고 갈비에선 밑졌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처음 수원갈비가 처음 전해진 곳은 서울지역이었다. 서울에서 수원 우시장을 찾으면서 수원갈비 맛을 보고 서울에 가서 수원갈비집을 열기 시작했는데 그러한 수원갈비집이 서울에서도 많이 생겨나고 그 맛이 사람과 사람들의 입으로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기에 이른다.
지금 수원엔 내로라하는 수원갈비집이 많고 그 명성은 수원갈비라는 간판이 전국 곳곳에 생겨날 정도로 그 유명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수원갈비엔 수원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수원갈비의 유래를 따라 지역의 역사 탐방을 해보는 것도 나름 지역을 이해하는데 좋은 여행이 될 수 있으며, 어느덧 수원의 역사가 돼버린 '수원갈비' 그에 따른 수원갈비의 역사를 알아보는 공간과 맘껏 즐길 수 있는 공간 또는 수원갈비거리가 조성되는 것도 체류형 관광을 유도하는데 좋은 방법일 수 있다.
김홍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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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사람도 놀란 환상적인 관광코스 ‘수원 1박 2일’
그 어느 관광지 부럽지 않는 수원1박2일 투어
수원에 40여년 가까이 살면서 수원의 곳곳을 수없이 돌아보았지만, 수원 1박 2일 코스로 이런 코스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이번 행사는 다음미디어 주관 하에 이루어졌으며, 수원의 아름다움과 볼거리를 알리는 이번 행사에 팔도를 대표하는 파워소셜러들과 함께해 더욱 뜻 깊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지난 3일부터 있었던 수원 1박2일 일정은 이렇다.
1일째는 수원시청을 출발해 연무대 국궁활쏘기체험->화성열차->성신사->서장대->서북각루->서문과 서북공심돈->장안문->지동벽화마을->노을빛 하늘무대->노을빛 전망대->연포갈비(저녁)->화홍문과 방화수류정야경->수원통닭거리->수원호스텔(사랑채) 2일째는 오전 9시부터 화성행궁->화령전->화성박물관->수원천->남수문->지동시장 순대타운에서 점심을 먹으며 수원 1박 2일 일정이 마무리가 된다.
"어라~ 이거 은근히 재밌네~"
국궁 활쏘기 체험 연무대 도착해 처음 한 것은 국궁활쏘기 체험! 수원에 살면서도 수원화성을 수없이 돌아봤지만 한 번도 경험을 해보지 못했던 터라 내심 잘 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앞섰다.
곧 국궁 사용법을 설명 받고 활시위를 당겨봤다. 아 이런 왼손이 부들거리는 거다. 나름 꽤 운동신경이 좋았다고 생각을 했건만 활쏘기는 운동신경과는 전혀 다른 어떤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듯 보였다.
옆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활시위를 당기며 과녁을 정확히 맞히는가 하면 처음 쏘는 여성도 3개나 맞추고 만다. 비록 이날 화살을 쏜 10여발 중 거의 빗나가고 겨우 한발만 맞췄지만 나름 뿌듯했고 재밌는 체험이었다. 수원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은 연무대 국궁활쏘기는 10발에 2000원이면 활쏘기를 할 수 있으며 지금껏 활쏘기를 한 번도 안 해봤다고 한다면 꼭 놓치지 말고 체험을 해보길 권하고 싶다.
활쏘기 체험이 끝나고 화성열차 출발하는 대기하는 시간에 잠시 동장대(연무대)와 동북공심돈을 구경하기로 했다.
수원화성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동장대'와 '동북공심돈'
동장대는 국궁활쏘기 체험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꽤 넒은 공간이지만 건물 하나만 있는걸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곳에서 각 병사들의 훈련을 체크하는 중심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화성에서도 중요한 전략적인 건물이기도 하며 동북공심돈과 함께 웅장해 보이는 건물 중의 하나다.
특히 동장대에선 넓게 3층의 넓은 계단형식으로 되어 있는걸 알 수 있는데 동장대 안쪽 마루부분에는 겨울철 온돌을 설치한 부분이 있어 외부엔 일반 병사들이 바깥에서 이곳에 있는 이곳 지휘자에게 보고나, 명령을 전달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동장대 마당을 보면 평평하지 않고 경사가 있는걸 알 수 있는데 장안문의 옹성 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곳 또한 비가 오면 빗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려가도록 설계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장대 뒤쪽에 보면 '영롱담' 이라는 아름다운 담장도 만나볼 수 있다. 이 영롱담은 기와로 꽃문양을 새겨놓은 담장으로, 마치 구슬이 울리는 소리가 날 듯 한 꽃문양의 담이라는 뜻으로 '영롱담'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동장대를 잠시 둘러보고 일행은 바로 위에 있는 동북공심돈으로 향했다. 동북공심돈은 수원화성에서도 가장 튼튼해 보이는 건축물중의 하나인데 특이한 것은 화포구멍이 사방으로 뚫려있는걸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만약에 적들이 성벽을 넘어 침투했을 경우 안쪽의 적들을 섬멸하기 위한 거라고 한다. 동북공심돈은 요새안의 또 다른 요새의 역할도 했던 거였다.
동북공심돈에 올라 잠시 수원풍경을 보고 곧바로 화성열차로 향했다.
화성열차를 타면 동장대에서 성신사까지 편안하게 수원화성을 관람할 수 있다.
아름다운 수원화성의 풍경을 화성열차와 함께~
동장대 앞에서 화성열차를 타면 국궁활쏘기 체험장인 연무대에서 팔달산 성신사 까지 수원화성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비롯해 화서공원과 장안공원의 아름드리 단풍나무 풍경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
화성열차는 임금의 어가를 모티브로 해서 어가렬차라고도 하는데 그 모습이 기다란 용의 모습을 형상화 했다.
화성열차를 타고 팔달산 성신사에 도착하면, 꼭 성신사를 둘러보도록 하자.
성신사는 화성을 지켜주는 화성 성신이 있는 곳으로 풍수지리적으로 본다면 수원지역에서 가장 좋은 자리이기도 가장 중요한 자리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화성성신께 소원을 빌어보는 것도 나름 재밌는 여행이 될 수 있다.
성신사를 둘러봤다면 바로 옆길을 이용해 팔달산을 올라가보자!
이 길이 팔달산을 오르는 길에서도 아름다운 길에 속하며 길을 따라 올라가면 서장대까지 길이 이어지게 되는데 예쁜 꽃들과 아름드리 소나무 풍경도 볼만 한다.
성곽을 따라 서장대에 도착하면 수원화성의 대표적인 건축물중의 하나인 웅장한 서장대의 풍경과 수원의 도심풍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수원화성 총괄 지휘소였던 '서장대' 팔달산 정산위에는 수원화성의 지휘소 역할을 했던 서장대를 만나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수만에 이르렀던 장용영군대를 총 지위했던 곳인데, 정조임금이 수원화성에 행차했을 때는 이곳에서 직접 지휘도 했었다고 한다.
수원화성을 둘러보면 커다란 황색깃발을 만나볼 수 있는데 왕이 행차했을 경우 황색깃발을 꽂아 놓았다고 한다. 또한 서장대에 오르면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풍경, 행궁동과 지동 및 수원지역의 다양한 도심풍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서장대에서 성곽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서북각루에 꼭 한번 올라가 보자 이곳은 나름 유명한 사진촬영 명소로 가을철 억새밭 풍경과 더불어 화서문과 서북공심돈과 더불어 거대한 성곽의 구조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서북공심돈과 장안문 사이엔 깊어가는 가을정취를 맘껏 누릴 수 있다.
특히, 이곳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의 모습은 수원화성에서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손꼽는 곳이며 화서문을 경계로 억새밭이 있는 곳은 화서공원이며 서북공심돈으로 지나는 길은 장안공원인데, 이 두 공원은 수원화성 성곽과 함께 가을 단풍이 들 때면 그 풍경이 매우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사진촬영을 좋아한다면 이 부근에서 괜찮은 풍경을 많이 담을 수 있다.
서북공심돈을 지나 아름답게 단풍이 물든 장안공원의 성곽을 따라 걷다보면 거대한 성문인 장안문이 나오게 된다.
옛날 사람들이 신성시 했던 수원화성의 정문인 '장안문' 수원화성의 정문인 장안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성문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장안문은 수원화성의 4대문 중 북쪽 문으로 정조 18년(1794년)에 건축됐다. 장안이라는 명칭은 중국의 역사에서 국가의 안녕을 상징하는 문자로 이를 정조가 북문의 이름으로 정해 태평성대를 구가한 중국 한·당의 서울이었던 장안의 영화를 화성에서 재현하려고 이름을 장안문이라 하였다고 한다.
특히 장안문에선 성혈(性穴) 흔적이 있는데 이는 그만큼 옛날 사람들에겐 장안문을 신성시 여겨서 이곳에서 돌이나 쇠붙이 같은 걸로 비비면서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또한 옹성과 적대가 붙어 있어 그 어느 곳보다 방어력이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옹성은 장안문의 성문을 보호를 시설물이며 바로 옆엔 그 어느 곳보다 튼튼한 지어진 적대를 볼 수 있는데 좌측엔 북서적대 우측엔 북동적대와 북동치가 장안문의 방어력을 더욱 견고히 하게 된다.
오후 2시부터 시작한 수원사람이 만나본 수원 1박2일 팸투어 수원화성 장안문을 둘러보고 곧 수원의 또 다른 명소인 지동벽화마을로 향했다.
정감이 있는 벽화가 가득한 지동벽화마을
수원의 명소로 급부상한 '지동벽화마을' 테마 타운이 따로 없네!
수원의 지동엔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다.
지동벽화마을을 비롯하여 노을빛 하늘무대, 노을빛 전망대, 지동순대타운, 못골시장, 미나리광 시장 등이 있으며 사람냄새 풀풀 나는 정감 나는 지동사람들도 만나볼 수 있다.
오후4시경 수원 지동벽화마을 입구에 이르자 윤건모 팔달구청장을 비롯하여 지동 박찬복 동장도 팔도에서 모인 파워소셜러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지동벽화마을 소개는 기노현 지동 총괄팀장이 맡았다.
바로 입구에서부터 지동 벽화들을 보면서 설명하기 바쁘다. 수원 지동벽화마을은 마을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지금도 벽화그리기가 한참인 곳이다.
이곳의 벽화들은 모두 봉사자들의 땀과 노력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 다른 곳과는 차별화 된다. 이곳을 올 때마다 그러한 봉사자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지금도 이렇게 마음이 따듯한 사람들이 사회에 많다는 건 아직 우리 사회가 아름답다는 걸 느끼게 된다.
지동 벽화마을을 보면서 벌써부터 입소문이 났는지 벽화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입구서부터 보인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친구들이랑 아기자기한 벽화그림을 사진으로 담기에 바쁘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벽화를 보러 온 사람들이 다른 친구들을 데리고 오고 또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입소문은 하나씩 하나씩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였다.
지동벽화마을의 인심을 느낄 수 있는, 거리에서 총각김치 담그는 모습을 보는 것만 해도 사람냄새 풀풀 나게 만들었다. 이런 하나하나의 정감 나는 모습이 지동의 참 매력이지 않을까?
또한 그러한 모습들이 입소문이 나고 지역 사람들이 자긍심도 높아지고 또한 적극적으로 동참할 때 지동은 더욱 아름다운 마을로 발전할 것이 눈앞에 선해 보였다.
작은 거라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작은 화분이나 직접 그린 것이나 또한 작은 아이디어 제품 등을 거리에 전시해 보자. 그러한 하나하나 모습들이 사람들을 이쪽으로 더욱 끌어당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거리를 지나 다시 벽화가 진행되고 있는 또 다른 골목으로 향했다. 어린이들의 상상력이 발휘된 지구를 지키는 수원화성 봉돈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봉돈이라 하면 다섯 개의 화두인데 여긴 7개 이상! 어린이들은 한반도를 넘어 지구를 생각하고 있는 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참 재미있는 발상이다. 또한 인근엔 이런 아기자기한 벽화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지금 벽화작업이 한참이 2구간에서 벽화골목길 조성의 총 책임자인 유순혜 작가에게 전체적인 벽화길 조성에 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노을빛 옥상음악회가 열리는 '지동 노을빛 하늘무대' 이곳은 지동의 또 하나의 명소인 노을빛 하늘무대다. 이곳에서는 매년 5월경 환상적인 노을빛과 함께 옥상음악회가 열리는 곳인데 요즘 인기가 너무 많아 매달 음악회를 열자는 의견이 많이 나오기도 했다.
노을빛 하늘무대에 들른 후 또 다른 명소인 지동 노을빛 전망대로 향했다 . 앞으로 수원을 찾는다면 이곳은 꼭 둘러봐야 할 필수코스가 된다.
수원 최고의 명소로 급부상한 수원 지동 제일교회 '노을빛 전망대'에서 보는 수원은 현재와 미래를 볼 수도 있으며, 특히 노을빛이 드는 시간이 되면 환상적인 수원 도심풍경과 함께 수원화성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수원의 명물 수원을 대표하는 '수원왕갈비'
자! 눈이 즐거워 졌다면 또 입이 즐거워해야 하는 법! 또 다른 수원의 명물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수원양념갈비! 수원양념갈비를 맛보고자 파워소셜러 일행은 연포갈비로 향했다. 수원갈비는 그동안 입에서 입으로 맛이 전해지고 각종 매스컴을 타면서 전 국민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런 수원왕갈비의 맛은 이곳에 옛날에 우시장이 위치한 것과 깊은 연관이 있게 된다.
수원갈비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는 우선 재료를 쓸 한우갈비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이 최대 요인이었고, 1940년경 지금의 영동시장 싸전거리엔 화춘제과를 경영했던 이귀성씨가 해방이 되면서 영동에 2층 목조건물을 사서 '화춘옥' 이란 간판을 내걸고 장사를 시작한 것이 시초로 당시 40여세였던 이씨는 이곳이 시장 안이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다는데 착안, 음식장사의 경험도 없이 먼저 해장국 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화춘옥 해장국은 다른 집과는 달리 소갈비를 푸짐하게 넣어 주었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고 도처에서 손님들이 모여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비싼 갈비를 넣어주다 보니 해장국의 질은 좋았지만 장기적인 면에서 이익에 문제가 발생하자 이에 갈비에다 양념을 넣고 무쳐서 재어 놓은 다음 맛있는 갈비의 맛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양념갈비를 구워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숯불에 구운 이 갈비는 그 맛이 일품이어서 단연 인기품목으로 떠올랐고, 화춘옥 갈비는 갈비대가 크고 양이 많은 것이 특징이어서 다른 음식에서는 이익이 남고 갈비에선 밑졌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화춘옥과 더불어 연포갈비, 삼부자 등 수원엔 내로라하는 수원갈비집이 많고 지금도 많은 손님들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그 명성은 수원갈비라는 간판이 전국 곳곳에 생겨날 정도로 그 유명세를 이어가고 있다.
CNN이 선정한 꼭 둘러봐야 하는 아름다운 명소 '방화수류정'
화홍문 인근 연포갈비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인근에 위치한 화홍문 야경과 방화수류정 야경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손꼽는다.
특히 방화수류정은 지난해 CNN이 선정한 '한국에 가면 꼭 둘러봐야 하는 아름다운 곳 50선'에도 선정되었던 곳으로 최근 옛 모습으로 복원이 완공되면서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이곳 또한 해질녘 풍경 또한 볼만하며, 특히 겨울철 설경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수원에 이런 곳이 있었네? 수원의 명물' 팔달문시장 통닭거리'
방화수류정과 화홍문의 야경을 보고 나서 배가 출출하다면 꼭 가봐야 할 수원의 명소가 또 하나 있다. 바로 남수문 인근에 있는 수원통닭거리!
이곳엔 진미통닭, 용성통닭, 장안통닭, 치킨타운, 행궁통닭, 남수통닭 등 인근에만 해도 20여개의 통닭집들이 들어서 있으며 값싸고 맛있는 통닭을 먹기 위해 많은 사람들로 항상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또한, 이곳은 각종 매스컴을 타면서 제2의 수원왕갈비의 명성을 통닭거리가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예약은 필수, 유스호스텔인 '수원호스텔'
자, 배도 든든하고 눈과 입이 즐거웠겠다. 이젠 푹 쉴 숙박업소를 소개를 한다면 수원 화성행궁 옆엔 유스호스텔급인 수원호스텔 수원화성 사랑채가 있다.
이곳은 시설도 좋고 값도 저렴해서 관광객에게 매우 인기가 있는 곳으로 주말이면 사람들로 항상 만원이라 예약을 필히 해야 한다.
특히 인근에 수원화성 화성행궁과 먹거리 볼거리가 많이 있어 체류형 숙박시설이 많이 필요로 하게 되는데, 체류형 숙박시설이 부족한 수원으로서는 체류형을 원하는 관광객들에게는 아쉬운 점이 남는 항목이다.
최고의 규모로 지어졌던 '화성행궁'
아침식사를 한 일행은 2시간동안 화성행궁을 둘러봤다.
화성행궁은 알다시피 임금이 지방에 내려오면 잠시 머물렀던 임시 거처인 곳을 말하며 특히 화성행궁은 행궁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지어졌다고 한다.
화성행궁 앞엔 커다란 느티나무 3그루가 품(品)자 모양으로 심어져 있는걸 볼 수 있는데 이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나타낸다고 한다.
또한 화성행궁 안으로 들어서면 바닥이 흙이 있는 곳까지는 임금님이 말을 타고 들어왔다고 하며 중간문 부터는 임금님만 걸을 수 있는 사각벽돌로 길을 내 국왕의 위엄을 나타내었다고 한다.
화성행궁 안에는 봉수당까지 3개의 문이 있는데 이것은 외조, 내조, 치조를 뜻한다고 한다.
외조는 천자가 제후를 접견하고 중요한 전례의식을 진행하는 곳이며, 치조는 정무를 처리하는 곳 내조는 매일의 공무를 처리하는 곳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화성행궁 옆엔 화령전이 있다.
화령전은 순조가 정조의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며 수원 지역에서 옛 모습을 그대로 가장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는 건물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전통무예의 기상을 느낄 수 있는 무예24기 공연
조선 최정예부대 장용영부대의 기상을 느낄 수 있는 '무예24기'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화성행궁과 화령전을 관람하고 11시부터는 화성행궁 신풍루 앞에서 무예24기 공연을 관람하러 신풍루 앞으로 향했다.
화성에 주둔했던 당대 조선의 최정예부대인 장용영부대는 내영과 외영이 있는데 내영은 한양 도성에 있었고 주력부대인 외영은 이곳 수원화성에 주둔했다고 한다.
당시 외영의 규모는 4만7,000여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 규모에 새삼 놀라게 된다.
또한 조선시대 전통무예의 무예24기의 무예는 당대 조선무예의 기상을 느껴볼 수 있는 무예 공연을 이곳에서 관람할 수 있다.
무예24기 공연이 끝나고 바로 화성박물관으로 이동했다.
걸어서 5~10분 거리에 있는데 화성박물관으로 가는 길 중간에는 여민각이라는 종각을 만나볼 수 있다. 정조의 정치철학을 담은 '여민각' 여민각은 정조가 신도시 화성을 축성할 당시 화성행궁 앞에 건립됐다가 일제 감정기를 거치면서 사라진 종각을 최근 다시 복원했다.
복원된 종각은 사)화성연구회의 조사와 서울대 한영우 교수의 연구를 토대로 옛 모습에 가깝게 복원한 것으로 종각명은 정조의 정치철학을 담아 '여민각'으로 지어졌고 종명은 수원시민 모두 화합하여 즐겁고 집집마다 부유하여 충만하고 수원시를 근본으로 세계로 창성하고 번화하라는 기원의 뜻으로 '인인화락', '호호부귀','수원위본','세방창화'로 명명됐다.
여민각의 종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 주철장 원광식 성종사 대표가 국보 제120호 용주사 범종을 모델로 무게 20톤 높이 3.2미터 직경 2.2미터 크기로 제작됐다.
수원화성에 대한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수원화성박물관
화성박물관은 수원화성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수원화성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면 수원 화성박물관을 찾아가 보는 것도 나름 수원화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화성박물관에서는 '한․중․일 전통목조건축 大木匠의 세계 특별 전시회'가 내년 1월 30일까지 열리고 있는데 수원화성과 더불어 전통목조건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대목장에 대해서도 많은걸 알아볼 수 있다.
수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탐방지 수원천과 전통시장
화성박물관에서 나와 우측으로 조금 걷다보면 자연형 하천인 수원천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최근에 복원된 남수문과 수원천 복개구간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며 인근 전통시장 탐방도 빼 놓을 수 없는 필수 여행코스에 해당된다.
한복이 유명한 영동시장을 비롯 종합 의류점이 많은 팔달문시장, 로데오거리, 순대로 유명한 지동시장, 못골시장, 미나리광시장 등이 수원천 인근에 들어서 있으며 이곳의 시장들은 여러 길로 서로를 이어져 주고 있다.
시간이 더 된다면 쇼핑천국인 이곳에서 전통시장 탐방을 하는 것 또한 나름 즐거운 수원 1박2일 여행이 될 수 있다.
이곳은 피할 수 없다. 맛있기로 유명한 수원 지동순대
드디어 점심시간!
점심은 또 하나의 수원의 명물인 지동시장을 찾았다.
수원에서 유명한 음식을 꼽으라면 당연 수원갈비를 꼽지만 또 하나 유명한 음식이 있다면 바로 지동순대!
지금은 입소문이 나서 그런지 지동순대타운을 찾는 사람들로 항상 북새통을 이룰 정도로 그 인기가 매우 좋다. 수원화성을 찾는 관광객은 필수 코스이기도 한 지동순대는 척 보면 일반 순대와도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일반 순대와의 차이점은 신선한 재료, 맛과, 엄격한 품질관리를 통해서 맛을 일정하게 전통적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동순대만의 특징은 수입산은 냉동으로 하는 반면 40년 전통 손맛이 살아있는 지동순대는 국내산 냉장상태 그대로의 돼지소장으로만 사용하며 양념 마늘 양파 지동순대만의 특별한 소스 등이 들어가 어느 지역보다도 맛있는 순대가 나온다고 한다.
또한 인근에 지동순대타운을 비롯해 밀알옛장터, 안성순대국, 충남집등 지역에서 유명한 맛집들이 줄지어 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수원 1박 2일 투어는 마무리가 됐다.
비록 1박 2일간 수원을 전부 소개하기는 무리지만 어떤 코스로 수원여행을 할까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우리의 코스를 소개해봤다. 참고하시길...
김홍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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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정취 볼거리 다양한 팔달산 둘레길
살아온 곳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는?
10월 말 단풍도 막바지에 이른다.
그동안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팔달산이지만 바쁜 일정으로 요즘 들어 자주 찾지 못했던 팔달산을 지난 30일 찾아가 보았다.
팔달산은 어렸을적 추억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초등학생 시절 팔달산 시립도서관을 자주 가면서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성곽을 자주 오르곤 했는데 당시는 수원성이라는 명칭만 알았을 뿐 화성에 대한 자세한 역사는 알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렸을 적 수원화성을 바라보고 자라서인지 수원화성에 대한 애정도 많아졌고 또한 위대한 문화유산을 느끼고 바라보며 자랐던 것이 여러 면에서 개인적으로 도움이 많이 된 듯싶다.
오늘은 가까운 곳인 팔달산 둘레길을 소개하고자 한다.
수원의 중심부에 있는 작은 산이지만 수원화성을 품고 있으며 수원향교, 돌 뜨던 자리와 성신사, 화성열차, 정조대왕 동상, 서북각루 앞 갈대밭, 아름다운 산책로 등 풍부한 볼거리도 제공한다.
팔달산에 오른 건 오후 3시경 팔달구보건소를 지나 팔달산으로 향해 올라갔다. 오르는 길의 우측엔 수원향교가 보인다. 수원향교는 고려 원종 22년에 봉담면 와우리에 세워졌던 것을 화성을 축성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 새롭게 건립했다고 한다.
이곳 향교에는 공자, 맹자 등 선인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수원향교를 지나 수원시립도서관으로 향했다.
수원시립도서관은 어렸을 적 많이 갔었던 곳이다. 중.고등학생 시절보다 초등학생 시절에 많이 갔었던 기억이 나는데 무엇보다 당시 도서관은 팔달산에 있는 시립도서관이 전부였고, 이곳엔 또한 어린이를 위한 책들도 많아서 자주 갔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인근에 위치한 선경도서관을 비롯해서 많은 도서관이 수원시 곳곳에 세워져 있지만 80년대 초반만 해도 도서관은 이곳과 경기도교육청 옆에 있는 도립도서관이 유일했다.
어렸을 적엔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시립도서관과 도립도서관을 자주 찾았는데 성인이 되고나서는 책을 멀리한 게 요즘은 너무나 후회가 되기도 한다. 특히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책 읽는 습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수원중앙도서관을 지나면 곧바로 팔달산 둘레길 코스로 접어든다. 우측엔 간간히 수원시내 풍경이 보이고 좌측엔 심심치 않게 인공적으로 쪼개진 듯한 돌들이 곳곳에 있는걸 발견하게 된다.
길을 가면서 돌들을 유심하게 봤는데 유독 인공적으로 절리현상을 보이는 바위들이 많았다. 그렇다 이곳 팔달산 또한 수원화성을 축성하기 위해 돌을 뜨던 부석소가 있던 장소인 것이다.
돌을 뜨는 자리를 부석소라고 했는데, 각 부석소에서 캐낸 양은 숙지산 8만1100덩어리, 여기산 6만2400덩어리, 권동 3만2000덩어리, 팔달산 1만3900덩어리 등 총 18만9400덩어리였다.
수원화성 축성에 필요한 돌을 대부분 이곳에서 조달했다고 한다. 팔달산도 그러한 큰 바위가 많으며 부석소가 있던 여기산, 숙지산 뿐만 아니라 인근 광교산, 칠보산도 그러한 바위들이 굉장히 많다.
수원화성의 성곽을 이루는 돌들의 태생은 바로 수원지역이였던 것이다.
수원도심 전경을 바라보면서 10여분 걸어가면 수원화성을 이어주는 성곽이 보인다. 이곳 인근에도 돌 뜨던 흔적이 있는 장소를 발견할 수 있는데, 홍난파 기념비 뒤에 있는 큰 바위에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가을 낙엽을 밟으며 10여분 더 걸어가면 옛 감강창 장군 동상이 있던 자리에 얼마 전 새로 지은 성신사가 보인다. 성신사는 화성신을 모신 곳으로 수원화성을 지켜주는 성신이 있는 곳이다. 수원을 하나의 커다란 지형을 놓고 본다면 팔달산 쪽은 여의주와 같은 장소이며 특히 화성신을 모신 이곳은 여의주에서도 빛나는 부분쯤으로 보면 된다.
성신사는 수원에서도 가장 중요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성신사를 지나 화성행궁 미로한정 아래로 보이는 화성행궁 풍경도 볼만하며 조금 더 걸어 내려가면 정조대왕 조형물과 동상을 만나볼 수 있다. 정조대왕 조형물은 세계문화유산 화성을 축성하고 효를 몸소 실천하며 끝없는 개혁과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정조대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형물로, 이곳에는 정조대왕의 연대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형물 벽면에는 원형도의 도설, 업적 등 약사기록등이 새겨져 있다. 정조대왕 동상을 지나 10여분 더 걸어가면 꼭 둘러볼 곳이 있다. 특히 10월에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한 수원의 명소인 서북각루 앞 갈대밭 풍경이다.
가을철 이맘때쯤 되면 이곳 풍경을 보려는 관광객들로 항상 만원을 이룬다. 방화수류정 풍경과 더불어 수원화성에서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며 특히 이곳은 연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이곳 풍경을 둘러본 후 곧바로 다시 팔달산 반대편 길로 들어섰다. 서북각루 앞 억새밭 풍경에 취해 엉뚱한 길로 접어들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억새밭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다시 둘레길을 가기가 망설여졌지만 둘레길을 소개하기로 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 이곳부터는 가을정취를 맘껏 느낄 수 있는 팔달산의 중요한 구간이 된다. 수성약수터에서 동네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바둑과 장기를 두는 모습, 에어로빅장과 테니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 인근 주민들이 천천히 단풍 풍경을 보면서 산책하는 모습들이 어느 때보다 평온하게 보인다.
도청 옆 산책길도 걸을만하다. 특히 이곳은 벚꽃축제 기간 때가 가장 아름다운데 도청벚꽃 축제는 인근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찾을 정도로 그 인기가 매우 높다.
수원시민회관 벽에 여러 조형물을 감상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시간은 한 시간 남짓 걸렸던 것 같다. 길이로 보면 대략 4km 남짓한 거리지만 볼거리가 굉장히 많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잠시나마 아름다운 명소인 팔달산 둘레 길을 걸어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을 접고 팔달산 둘레길의 가을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김홍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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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여년전 화성 축성의 길을 걷다
수원화성 축성 216주년을 맞아 걸어본 비봉 구포리~화성행궁 성신사
지난 10월 24일, 수원화성 축성 216주년을 맞아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고자 옛 포구가 있던 화성시 비봉면 구포리에서 화성행궁과 성신사 까지 25km의 구간을 걸었다.
수원화성 축성의 길은 220여 년 전 수원화성 축성시 충청도, 황해도, 강원도, 경기도, 전라도 지역에서 축성에 필요한 나무와 물자를 배로 실어와 옛 포구가 있었던 화성시 구포리 포구에서 수원화성까지 물자를 운송했던 길을 말한다.
이 길의 주요한 루트는 옛 포구가 있던 구포리에서 출발 쌍학사거리, 비봉IC, 어천저수지, 천천리마을, 수원국립산림연구원, 수원여대, 호매실교, 서둔동, 서울농대, 항미정, 서호, 여기산, 숙지산, 화서문, 화성행궁, 성신사에 이르는 25km의 길이다.
6시간에 걸쳐 걸으면서 느꼈던 수많은 감정과 220여 년 전 당시 우리 조상님들은 축성에 필요한 여러 물자를 어떻게 운반을 했고 어떠한 이야기를 했으며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을까 하는 조금의 상상력을 불어 넣어 '화성축성의길'을 써보기로 했다.
구포리 포구
220여년 전 구포리 포구를 회상하다
이른아침 동이 트자 포구 인근에 있는 한 주막에서 주모의 부름이 들러온다.
"동이 텄어요 얼른 일어나세요!" 닭 울음소리 또한 피곤한 몸을 깨우기 바쁘다. 어제 인부들과 이곳 주막거리에서 막걸리를 마셨던 게 탈이 났는지 깨자마자 이내 뒷간으로 뛰어갔다.
볼일을 보고 나서 잠시 포구지역을 바라봤다. 고깃배들과 나무를 싫은 수송선들이 몇 척 정박해 있고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바다가 잔잔히 물결을 요동치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서야 한다. 해가 뜨기 전 출발해야 화성 축성 공사현장에 해질녘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구 인근에는 나무를 산적해 놓은 보관소가 있다. 여러 지역에서 배를 실어와 이곳에 적재해 놓은 것인데 지금은 꽤 많게 쌓여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요 운송로 구간에 있는 교각 하나가 보수공사중이여서 목재가 많이 쌓여있다. 어제는 오늘 실어 나를 목재를 수레에 옮긴 작업을 해 놓은바 있다.
또 이곳엔 수레를 끌 소와 말 등이 꽤 있는데 소를 수레가 있는 이곳으로 끌고 와야 했다.
아침부터 주막일대가 분주하다. 많은 사람들이 물자를 나르기 위해 수레에 나무를 싣는가 하면 옹기종기 모여 국밥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사람, 수레의 바퀴를 보며 하나하나 점검을 하는 사람,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맡은 임무를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였다.
동트는 아침 7시경 목재를 실은 수레를 끌고 천천히 걷기를 시작했다. 뒤를 이어 10여개의 수레가 꼬리를 길게 이으며 천천히 따라오기 시작한다. 수원까지 거리는 20여 km 지금부터 열심히 가야 화성공사 인근 주막에서 막걸리 한잔 할 수 있을 터였다.
잠시 후 교차로가 보인다. 쌍학 사거리에는 서해 어촌들을 이어주는 작은 길과 화성축성의 길로 향하는 큰길이 나있다. 천천히 화성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간간히 보이는 농가에서 구수한 냄새가 진동한다. 이른 아침부터 아침을 하는 듯, 초가집 지붕위에서 연기를 한 아름 뿜어낸다.
길가엔 농가들이 굉장히 많다. 인근에 고려시대 부터 군부대가 인근에 주둔해 있고, 주요한 곡창지대로 인해 농부들이 굉장히 많고 또한 화성을 축성하면서 또 큰 저수지도 여럿 만든다는 소문이 나돈다.
그만큼 이 지역은 농업에 있어서 굉장히 활성화 되는 지역 중의 한곳이었다. 어촌리 마을에 이르자 운송로 인근에 있는 지역 주민들은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아침부터 흙먼지 날리며 수레를 끄는 소의 변이나 수레 굴러가는 소리로 수년째 소음공해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불편함을 겪고 있는 일을 임금님은 이미 알고 있었고 최근 들어 이 지역 사람들에게 많은 혜택을 줄 거라는 소문까지 들린다.
어천저수지 인근에 다리를 한두 개 건너야 한다. 이 다리는 수년전 다리를 크고 튼튼하게 만들었는데 최근 들어 많은 짐을 실은 수레의 무게를 못 이겨 보수공사가 한참이다.
인근에는 아침부터 아이들이 나와 가재를 잡으며 물장구치며 놀고 있고 아침부터 빨래방망이를 들고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모습도 보인다.
정조의 호위부대인 장용영부대
어천저수지를 지나면서 유독 많은 병사들이 보인다. 왜일까?
인근에 수만의 장용영군대가 주둔해 있는 것인데 이 지역엔 옛날부터 나라의 주력 부대가 항상 주둔해 있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주요한 곡창지대이면서도 군사상 중요한 요충지인 것이다.
장용영부대는 1788년 장용영으로 개칭한 뒤 1793년 기존 5군영보다 더 큰 비중으로 장용영 내영과 장용영 외영으로 확대 편제되었다고 한다. 내영은 한양도성에 주둔시키고, 외영은 화성 축성(1796)이 완료되면 그곳으로 이동해 주둔하게 된다고 한다.
1795년엔 다른 군영의 군대까지 흡수해 5사 23초의 편제를 갖추었고 이를 장용사(장용영 대장)가 이를 지휘하였다.
멀리 칠보산이 점점 다가오면서 점심시간에 맞춰 칠보고을에 다다랄 수 있었다. 이곳은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인데 이른 아침부터 나선 일꾼들은 이곳에서 주로 점심을 먹는다. 화성축성의 인부들을 위한 지정된 주막이 있으며, 지정된 주막에서 먹으면 저렴한 가격으로 점심끼니를 때울 수 있다. 30여분 막걸리와 국밥을 먹은 일행은 다시 길을 재촉해야 했다.
지금부터 열심히 가야 장안문 인근 주막거리에서 막걸리를 한잔 할 수 있을터. 길을 다시 재촉했다.
칠보산 인근에 이르면 나지막한 언덕을 넘어야 한다. 운송로에서도 가장 힘든 코스이다. 가을이 깊어지는 10월 단풍으로 물든 칠보산이 어느 때보다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작은 언덕을 오를 즈음 일행의 한 수레에서 일이 터지고 만다. 잘 굴러가던 수레바퀴가 떨어져 나간 것이다. 수레엔 수리할 수 있는 연장과 여분의 바퀴를 항상 싣고 다닌다.
이런 일을 겪었을 때 신속히 수리하기 위해서다. 30여분의 지체 속에 바퀴를 교체해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축만제(서호)와 여기산
중요한 채석장이었던 백로의 고향 여기산
울긋불긋 단풍이 들은 칠보산의 언덕을 넘어가면 평탄한 길이 이어져 속도를 더 낼 수 있다. 평탄한 길에 저 멀리 목적지인 팔달산이 보이고, 여기산과 숙지산까지 보인다.
여기산에 다다르자 오후 3시경 이른 아침 7시부터 시작해 여기까지 오는데 8시간이 걸렸다.
여기산엔 채석장이 있다.
이 주변엔 돌 다듬는 소리가 나지막한 산 주변에 울러 퍼진다. 여기산 채석장 인근에 있는 부석소에서도 축성에 필요한 석재들이 산적해 있었다.
목재를 주로 나르는 수레에 비해 석재를 나르는 수레는 더욱 튼튼하고 또한 두 마리의 황소가 수레를 끌게 된다. 그 힘센 황소라도 석재를 나르는 덴 2마리가 필요할 정도로 많은 힘을 필요로 한 것이다. 특히 그러한 거대한 석재를 쉽게 들어 올리는 장치(거중기)도 만들었다고 하니 그 거대한 화성을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축성할 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참 기가 찰 노릇이다.
여기산 인근엔 특히 백로가 많이 살고 있다. 언제부터 살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둔전(국가가 운영했던 논)이 많고 먹을 것이 풍부해 아주 오래전부터 서식하게 되었나 보다. 채석장에서 나오는 일행과 함루해 숙지산 방향으로 향했다. 여기산에서 숙지산까지의 거리는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숙지산에도 부석소가 2군데 있다. 그쪽의 일행과 합치면 꽤 길다란 행렬이 될 것이다. 또한 숙지산에서 화성까지 거리는 한시간 정도 가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오후 7시 숙지산을 거쳐 드디어 목적지인 화서문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하루종일 운송하느라 힘든 몸을 이끌고 일행과 함께 인근에 있는 주막거리로 향했다.
화성을 축성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주막거리는 장안문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한양에서 오는 사람들과 남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주로 거쳐서 가는 길에 있어 사람들로 항상 북적거린다. 화성에 축성에 참여하고 있는 인원은 대략 수천명에 이른다.
그 중에 한 무리는 팔달문 인근의 주막거리로 향하는가 하면 또 한 무리는 이곳 장안문 인근 주막거리에 모이게 된다. 운송을 끝내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함께 인근 주막에서 닭고기와 시원한 막걸리를 한잔 하면서 힘들었던 하루를 보내본다.
곧 화성이 완공되면 일했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낙성연을 벌인다고 하니 그 시기가 기다려진다.
다시 202년 현실로 돌아와서
2012년 104만의 거대한 도시로 성장한 수원, 그 시작은 '화성축성의길' 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수원의 형성 시기는 언제부터였을까?
모수국부터 시작한다는 말도 많지만 실제로 우리가 사는 이 지역에서 살게 된 이유는 수원화성이 축성한 시기부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축성의 시기를 여러물자를 처음으로 운송했던 '화성축성의길'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화성을 축성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흘렸던 땀들,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화성과, 축성하면서 이런저런 수많은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있어서 더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이 석재와 목재를 나르면서 하나하나 만들었던 화성 이것이 지금의 수원이 있게 된 것이고, 오늘 걸었던 조상님들의 숨결이 남아있는 그 길을 걸으면서 화성축성의 길의 의미 또한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걸었던 25km의 길을 걸으며 조상님들의 땀과 숨결을 느낄 수 있었고, 여기산과 숙지산엔 아직도 그 흔적들이 돌 표면위에 남아 있었다. 지금도 여기산과 숙지산 그리고 팔달산의 채석장소에 가면 돌 깨는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화성축성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수원에서 50-2, 50-4, 50-5번 버스를 타고 화성시 비봉면 쌍학사거리에서 내려 동학천을 따라 서해안고속도로 까지 가면 그곳이 바로 옛 포구가 있던 자리이다.
지금은 바닷물을 막아 넓은 평야지대가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여기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 옛 포구지역이었다. 주요한 축성에 필요한 목재와 물자를 이곳을 통해 들어왔으며 당시 이곳에도 주막거리가 있었다고 한다.
옛 구포리 포구지역에서 시작해서 도로를 따라 칠보마을까지 올라온 후 칠보산을 끼고 국림산림과학연구원을 거쳐 수원여대, 구운동행정타운, 여기산, 숙지산, 화서문까지 걸어오면 된다. 볼거리 풍부한 '화성축성의 길' 25km의 걷기 구간엔 조상님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하면 아름다운 자연풍경도 접해볼 수 있다.
여기산의 정상으로 오르면 커다란 비석이 두 개 서있고 안쪽으로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심상치 않는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다. 그 바위에서 220여 년 전 돌 뜨던 흔적을 찾아보자. 또한 숙지산에도 돌 뜨던 장소가 2군데 있다. 담배인삼공사 맞은편에 숙지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는데 50m 정도 산을 오르면 거대한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그 바위 오른쪽 윗부분에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다른 한곳은 숙지산 정상 쉼터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을 따라 10여분 걸어 내려가면 산 중턱에 거대한 바위가 있는 장소가 있다. 그 곳에도 돌 뜨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화성시 쪽에서 본 칠보산
아름다운 자연풍경이 많은 '화성축성의 길'은 특히 칠보산의 가을 정취가 매우 아름답다. 수원에서 바라본 칠보산과 화성시에서 바라본 칠보산은 전혀 색다른 느낌을 준다.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칠보산의 뒷모습도 볼만하며 칠보산을 둘러볼 수 있는 둘레길도 걸을만하다. 화성시와 수원시의 경계길을 넘어가면 국립산림연구원을 끼고 걷는 구간이 있는데 그 길 또한 아름답다.
오래된 정원을 보는듯한 서울대농대부지 인근 주택가들의 모습도 꽤 운치가 있으며 시간이 더 된다면 서울대농대부지의 안쪽으로 들어가 오래된 정원도 감상해 보자. 또한 인근 넝쿨 잎에 덮여있는 노후화된 건물들이 꽤 괜찮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아름다운 서호와 여기산 200여년전 형성된 축만제 풍경은 수원에서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손꼽는 곳이다. 특히 여기산과 더불어 서호천 풍경 또한 아름다운데 인근 아름드리나무와 더불어 때 묻지l 않은 자연을 만낄할 수 있다. 여기산에도 산을 둘러볼 수 있는 둘레길이 있는데 작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산림이 울창한 숲길을 만나볼 수 있다. 여기산의 둘레길은 한 바퀴 도는데 20여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작은 오솔길의 이 길을 걷다보면 옛 토성을 만나볼 수 있으며, 인근엔 우장춘 박사의 묘소와 우리나라 농업 발전을 위해 노력한 많은 위인들의 묘가 여기산에 묘장되어 있다. 또한 팔달산 중턱에 있는 성신사는 화성신을 모시는 곳이다. 화성을 수호하는 화성신께 감사의 마음을 가져보는 것도 의미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다.
수원엔 이런 옛 조상님들의 숨결이 깃든 대표적인 길이 두개 있다. 하나는 정조대왕이 옛 융.건릉을 다녔던 '능행차길'과, 수원화성을 축성했던 '화성축성의 길'이 있다. 능행차길에는 정신적인 철학과 효심이 깃든 길이 있는가 하면, 축성의 길에는 백성들의 땀과 이야기가 깃들여 있다.
능행차길과 더불어 화성 축성의 길에도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지역 사람으로서 필요할 듯 보이고 그러한 의미를 담아 한번 화성축성의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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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맛 60년 전통 ‘북수동 대왕칼국수’
수원화성과 인접한 곳, 추억을 되찾고자 한다면? 수원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
얼마 전 수원지역에서 칼국수 잘하는 집을 몇 군데 소개한바 있다. 오늘 소개할 집은 마음이 배부른 곳이라고나 할까. 인심이 푸짐한 곳이라고나 할까, 60년 세월동안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해온 북수동 대왕칼국수집을 소개해보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북수동 근처에 유명한 칼국수집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도 활동적이지 않았던 시기 쉽게 찾아가기가 망설였던 적이 있다. 2~3년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우연찮게 찾아가게 되었는데 처음 느낀 바로는 참 따듯한 곳이었다는 걸 느꼈던 거 같다. 칼국수 맛도 맛있지만 할머니의 친절히 대해주는 모습들이 더욱 인상 깊었던 대왕칼국수집. 원래 나와서 음식을 즐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이 이후에 음식점을 두루 다녔던 거 같다. 대왕칼국수집은 북수동 31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외부에서 보면 척 봐도 꽤 오래된 듯한 허름한 건물에 실내는 좁은 공간이지만 손수 칼국수 면을 빗는 모습이 그 어느 곳보다 정감 가게 만든다. 처음 터를 잡았을 때는 콩국수 가격이 단돈 30원 정도였다고 한다. 그 가격이 세월을 말하는 거 같다. 대략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반쯤부터였다고 하니 제법 단골도 많을 듯싶다. 실내에 앉아 천천히 사람들을 바라보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오는 듯 보인다. 여행객도 간혹 보이고 추억에 이끌려서 오는 사람들도 많아 보였다. 아무래도 추억과 정성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거 같다. 이곳의 칼국수는 커다란 면에 육수는 시원한 국물 맛을 낸다. 시골의 투박스럽기도 하고 정감 있다고나 할까. 이곳의 맛은 그렇게 다가왔다.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다가온다고나 할까. 누구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김홍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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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83
김치찌개가 가장 맛있게 끓여지는 시간
새마을 식당
김이 모락모락, 부글부글 끓는 소리를 내며 식탁 위의 김치찌개가 아우성이다. 점심시간에 맞춰 하나둘 김치찌개가 나가면, 그새 새 김치찌개가 준비를 하며 버너의 불을 달군다. 탄생되는 시간은 7분, 이 음식의 이름은 ‘7분돼지김치’이다. 광교신도시 부근에 위치한 '새마을 식당'의 일상적 풍경이다. 일반 고깃집은 저녁에 손님들이 들어차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은 점심시간부터 사람들로 가득 들어찬다. 신도시에 음식점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돼지고기가 큼직하게 들어간 김치찌개의 맛은 이곳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만큼 이곳의 김치찌개는 새마을식당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기 메뉴다. 이곳의 또 하나 대표적인 메뉴가 있다면, 얇게 썰어 구워먹는 매콤한 맛의 열탄불고기. 열탄 불판위의 넉넉히 구워져 더욱 맛과 향이 배가되는 불고기는 상추와 깻잎 마늘과 소스를 적당히 넣어 곁들여 먹으면 더욱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다. ‘7분돼지김치’와 열탄불고기의 야릇한 만남. 오늘의 점심은 이 두 가지로 정했다. 새마을식당은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수원지역에서도 곳곳에 있을 정도로 그 이름이 꽤 알려져 있다. 2002년부터 시작해 지금은 전국 곳곳에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성업 중에 있으며, 실내 인테리어의 구성은 어렸을 적 교실에서 난로 위 도시락을 올려놓은 풍경이 그려진다. 일행과 함께 음식을 기다리다 옆에서 열심히 김치찌개를 끓이는 직원분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신기하다. 웬만한 식당은 김치찌개를 조리실에서 음식을 하고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선 자리를 하나 마련해 놓고 그곳에서 즉석에서 끓인다. 사연이 있는 것일까. 궁금해 물었더니 김치찌개가 가장 맛있게 끓여지는 시간은 7분이란다. 7분 만에 탄생되는 김치찌개에 놀라지만 탄생되는 김치찌개마다 현란한 솜씨로 김치와 고기를 가위질하는 모습에도 놀라게 된다. 이렇게 가위질로 썰어야 나중에 비벼먹기 좋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들었다. 고기와 김치가 적당히 썰어진 김치찌개에 밥과 김 가루를 넣고 적당히 비비면 ‘7분 김치찌개’ 완성. 7분돼지김치의 맛을 지금부터 즐긴다고 생각하니 입가에 웃음이 지워지지 않는다. 구수한 연기를 내뿜으며 고기가 익어가는 모습에 이내 하나 집어 깻잎에 얹어 놓았다. 열탄불고기의 참을 수 없는 에너지 기운이 주변에 감돌며 구수한 고기냄새가 코 끝을 자극한다. 깻잎의 톡쏘는 맛과 함께 열탄불고기의 고소함이 입안에 가득 감돌며 침샘을 자극했다. 겨울철 난로 위 옛 추억의 도시락이 생각난다면 한번 새마을식당을 찾아 옛 교실의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풍경에서 가족과 함께, 또는 직장 동료들과 점심 메뉴로 음식을 즐겨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김홍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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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만석공원에서 만난 '효행길'
수원을 기록하는 이유는?
팔색길 중 ‘효행길’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인 현릉원을 참배하러 갈 때 왕래하던 길이다. 지지대비를 시작으로 매교교까지 총 3시간이 소요되며, 매교교에서 융·건릉까지· 더 걷는다면 3시간 정도 더 소요된다. 장마가 소강기에 접어든 7월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 ‘팔색길’의 하나인 효행길을 걷기 위해서다. 지지대고개를 가기 위해선 버스를 타야 한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기다렸던 버스를 타고 이목동차고지에서 내린 건 5시 40분 정도, 날은 밝았지만 아직 새벽이라 공기는 시원했다. 앞으로 걷게 될 효행길 지도를 보면서 가야 할 길을 머릿속으로 미리 그려보았다. 평소 잘 아는 길이라도 혼자 걷는 건 약간 두려움이 앞선다. 잘 걸을 수 있을까?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잠시 걱정이 앞서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이런 저런 생각 속에 드디어 출발점인 지지대고개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이라 지나는 자동차는 한적했다. 20여 년 전만 해도 도로가 좁았는데 꽤 넓어진 느낌이다. 지금은 도로가 나고 경사면도 크지 않지만 과거엔 지독하게 힘들고 고생한 고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탓에 지지대고개라 불러졌나 보다. 효행공원의 길을 걸으며 이목동차고지 방향으로 내려오니 오래된 다리가 하나 보인다. 이 다리엔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비석엔 ‘괴목정교’라고 쓰여 있다. 임시 표석이다. 기존의 비석은 박물관에 이전됐다. 차고지 맞은편엔 커다란 느티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 수령 200년을 넘는 오래된 느티나무다. 잠시 200여 년 전 이곳의 풍경을 그려보았다. 길을 따라 느티나무들과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광교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이 조용히 흐르고 있으며 물소리와 새소리 느티나무로 만들었을 법한 교각 하나가 떡 하니 서있는 모습이 당시 참 풍경이 좋았을 것으로 보인다. 지지대 고개를 넘어 첫 번째 만나는 다리니 그 모습을 반기는 마음 또한 어땠을까? 잠시 생각 속에 빠져본다. 옛 노송지대 길을 계속 걸으니 곧 만석공원(만석거)에 다다랐다. 6시부터 걷기를 시작해 이곳에 이르니 대략 7시 30분 여기까지 오는데 1시간 반 정도 걸렸다.
김홍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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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가격 중화요리전문점 송죽동 ‘아트반점’
평소에 자주 가는 단골집이 하나 있다면 인근에 위치한 아트반점이다. 이곳은 중화요리 전문점으로 무엇보다 '착한가격'이라는 점이 눈낄을 사로잡는다. 어지간해선 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에 물가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아트반점은 오랫동안 착한 가격을 고집한다. 그래서 주머니가 가벼운 나들이객에게는 한 끼를 때우기엔 더없이 좋다. 특히, 동네에선 가성비 좋고 좋아하는 중국집이 하나 둘 있는데 이곳이 그중의 하나이다. 위치한 곳은 수원시 송죽동 경수대로 995번 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1번 국도 도로변 인근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실내 또한 넉넉한 공간으로 깨끗하며 20여 명 정도 수용 가능하다. 음식 맛도 좋은 편에 속한다. 배달 또한 가능하며, 중화요리는 물론 한식 메뉴도 다양하다. 인근지역 방문했을 시 가볍게 식사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찾아가는 곳 경기 수원시 장안구 경수대로995번길 11-3 1층 전화 031-251-9021
김홍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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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추어탕이 일품이네 수원 '보신갈비'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수원 ‘보신갈비’
아름다운 정원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게 만드는 매력이 있나 보다..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서 정원을 갖춘 음식점을 찾아보기 힘든 터에 정원이 보이는 음식점이 보이자 자연스레 우리의 지친 몸을 이끌었다. 이곳은 팔달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수원에서도 꽤 이름이 알려져 있는 ‘보신갈비’ 집이다. 갈비의 고장인 수원은 유난히 명품 갈비전문점이 많다. 그런 관계로 어지간한 기술로 수원에서 갈비집을 차린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갈비만큼은 아무리 싸더라도 수원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름이 알려진 수원갈비 전문점들은 하나같이 그 맛과 서비스가 어딜 내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괜찮다. 2층 구조로 되어있는 주택형식의 실내로 들어가면 정원이 보이는 공간을 만나볼 수 있다. 큼직한 유리 밖의 초록이 실내로 빛을 뿌리며 꽤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실외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일행은 곧 실외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멋스러운 나무들이 주변을 둘러쌓고 있어 꼭 숲속에 온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곳곳에 숨어있는 조형물 또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메뉴를 보니 갈비전문점답게 생갈비를 비롯해 양념갈비, 한우불고기, 갈비탕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추어탕과 장어정식도 이곳에서 맛볼 수 있다. 경기도 모범음식점인 보신갈비는 예전부터 이곳이 맛있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으나 일행과 함께 오기는 처음이다. 마음 같아선 대표 음식을 맛보고 싶었지만 갈비전문점에서 추어탕 맛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추어탕을 주문해 보기로 했다. 곧 서너개의 반찬이 나왔다. 색이 심상치가 않다. 반찬만 봐도 이곳의 맛이 그려진다고나 할까. 특히 배추김치와 깍두기 김치는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을 삼킬 정도로 그 색과 모양새가 미각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항상 음식점을 가면 김치맛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김치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접하기 쉬운 음식이기에 보통 김치는 비슷한 맛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김치만큼 내면의 맛을 드려내는 음식은 드물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항상 음식점을 가면 김치 속에서 이곳의 정성과 맛 등을 그려낸다. 그런 관계로 김치가 맛있는 음식점은 대부분의 다른 음식도 맛있는 경우가 많았다. 곧 뚝배기에 부글부글 끓는 추어탕이 나왔다. 진해 보이는 국물을 먼저 한 입 먹어보았다. 담백하면서도 추어탕 특유의 맛이 입안을 감돌며 감탄사를 자아낸다. 이런 맛에 예전 대장금을 촬영했던 연예인들도 맛있다고 칭찬까지 했다니 그럴 만도 하다.. 대표음식이 아닌 추어탕이 이 정도니 다른 음식은 안 봐도 뻔하다. 음식을 맛보며 일행과 대화를 하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처음엔 정원이 있어 그런가 싶더니 주택형식의 음식점이 우리의 마음을 가정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함을 주나 보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곳, 집에 있는 편안함이 있는 곳, 이곳의 풍경만큼 깊은 맛을 자아내는 곳, 올여름 보신갈비에서 편안함과 함께 그 깊은 맛을 즐겨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김홍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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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86
이국적인 풍경, 수원 ‘월화원’에 가다
도심과 가까운 곳
월화원은 중국 정원의 특징을 그대로 수원시 효원공원내에 재현한, 물을 테마로 한 전통정원이다. 8월 중순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무더위가 한참인 오후 1시, 점심을 먹고 잠시 시원한 공간을 찾아, 도심에서 이국적인 정취를 찾아, 효원공원내에 위치한 '월화원'을 찾아가 보았다.
어떠한 공간이든 머물고 싶은 공간이 있는가 하면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 있다. 그 중 수원도심 속에서 머물고 싶은 공간이 하나 있다면 중국전통정원인 '월화원'이 아닐까 싶다. 이곳에서 느낀 감정은 '아! 이곳에 머물고 싶다'라는 감정이 느껴졌던 공간 중 하나다.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월화원에 왔을 때는 많은 시민들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쉬고 있었다. 가족과 연인이 보이는가 하면 물장난을 하며 노는 어린이들은 이곳저곳 그늘진 정자 아래 수변 풍경을 보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연인들과, 코스프레 사진촬영 명소인 월화원
입구에 들어서면 특히나 연인들이 많이 보인다. 그만큼 이곳은 연인들의 사진 촬영명소로도 유명하다. 우선은 도심 속에서 찾기 힘든 이국적인 풍경도 그렇지만, 아름다운 수변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이곳을 사진 촬영명소로 만드는 듯싶다.
특히 이곳은 코스프레 마니아층에 더할 수 없는 촬영 명소로 알려져 있다. 어느 때는 단체로 와서 다양한 복장을 하며 자신들이 입고 온 의상을 뽐내기도 한다.
월화원에서는 다양한 중국 전통양식의 구조물들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각 구조물로 통하는 문과 창문도 중국전통양식을 상징하는 다양한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각 정자로 통하는 길 또한 중국색이 강한 모양으로 이어져 있다. 이곳의 건축양식 또한 더운 중국의 남방지역의 건축물이라 그런지 묵직한 느낌보단 가볍고 화려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정자 안에서 보는 수변풍경을 보고 있자면 꼭 배를 타고 다니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전체적인 느낌은 수변위에서 뱃놀이라는 컨셉이라고나 할까? 역시나 중국 남방지역의 특색이 잘 살린 듯 싶었다. 중국에서 중국 남방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진씨서원(진가사)를 들 수 있는데 중국의 고대 건축물들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 광동성 이라고 한다. 동아시아 건축에 있어서 중국 남부지역의 대표적인 건축양식을 알아보고자 한다면 광동성을 찾아가면 된다.
중국 남방 건축양식을 알아볼 수 있다
특히, 중국 남방 건축의 특징은 우선 정원이 화려하다. 전체 건축물이 웅장한 맛도 있지만 무엇보다 수변풍경의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중국 남부지방만의 독특한 지형의 특징이 건축양식에서도 그대로 드려나게 된다. 월화원은 그러한 중국남부지역의 독특한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월화원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우정'이라는 정자가 하나 있는데 이 정자는 친구와 만나 담소를 하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가산의 정자이다. 또한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작은 폭포가 정자의 운치를 더한다.
월화원은 2005년도에 조성된 중국식 전통 정원이며 중국 광동성과 경기도의 우호교류증진을 위해 효원공원내에 지어졌다. 현재는 수원시 푸른녹지사업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 한다.
김홍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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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적 탐방 지능의 활성화에 인류의 미래가 달려있다
범과 토끼가 서울대 가면 생기는 문제는?
공연 무대 또한 소규모로 여러 지역에서 활성화 하는 것도 인류의 진보적 길에 도움이 된다. 현실은 다양한 매채와 영상물을 통해 접하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활동적이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이는 진보적 인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 範 남녀 격주제가 시행된다면, 미국의 다양한 공연문화를 지향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 영상 유튜브 Gracie Abrams - Risk (Live From The Today Show/2024) Gracie Abrams는 1999년생으로 미국 출신의 여성 솔로가수이다. 맑고 어린 음색이 돋보이며, 많은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아버지는 헐리우드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유명 영화감독이다. (JJ Abrams) Gracie Abrams는 2019년 인터스코프 레코드와 음반 계약을 맺고 첫 싱글 'Mean It'을 발매하며 정식 데뷔했다. 최근 곡은 'I Love You, I’m Sorry'라는 곡으로 그녀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이목을 끌고 있다. 영상 유튜브
Gracie Abrams - I Love You, I’m Sorry (Official Music Video)
김홍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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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수원여행 어디가 좋을까!
시간여행, 1억 년의 역사가 숨겨진 곳,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곳 수원화성. 사기로 얼룩진 그들의 실체는 인류 사냥 전문 식인 세력이었다.
수원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도시로,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지역의 고유한 역사 또한 간직하고 있으며, 선대 조상들이 남긴 여러 보물 또한 다채로운 곳이다. 첫 날 수원을 방문했다면 처음 가볼 곳은 화성행궁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행궁으로 가장 큰 규모로 지어졌다. 팔달산이라는 낮은 산과 평지에 건축되었다는 점이 손꼽는다. 성곽 또한 평지와 산을 오르내리며 지형을 이용한 절정의 건축미를 선보인다. 화홍문은 방화수류정과 함께 성곽의 미로 손꼽으며 동양의 대표적인 성곽으로 자리매김 했다. <카페 거리로 유명한 행궁동> <화성행궁> <시대를 초월한 정조(범)와 관련된 것으로 '자연의 령'과 '목신'을 기리고 모신 곳이다.> 팔달문 시장은 수원의 대표 재래시장이다. 먹거리뿐만이 아니라 특산품 또한 구입할 수 있으며, 명물거리인 통닭거리와 순대로 유명한 지동순대도 가볼만 하다. 인근엔 수원화성박물관이 있으며 수원화성의 역사와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면 방문해 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볼거리를 더 꼽자면 행리단길과 행궁동도 들 수 있다. <전국적 유명세를 탄 명물 수원통닭거리> 월화원은 인계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통 중국식 정원으로, 아름다운 정원을 산책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시간이 더 된다면 인계동 나혜석거리와 카페거리도 가볼 만 한다. 다양한 컨셉의 카페들이 모여 있는 거리로, 커피를 즐기며 휴식을 즐길 수 있다. 구의 신대시대, 수원 칠보산 보물로 추측한 과학적 사실 그 진실은? <만석거, 만석공원> 그 외 방문해볼만한 곳을 추천한다면 광교호수공원과 광교카페거리, 수원박물관, 인계동 카페 거리, 수원 로데오 거리 등이다. 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정조의 이야기가 깃든 곳으로, 만석거 또한 가볼만 하다. 만석거는 조선 시대의 저수지로 1776~1800 시기에 조성됐다. 신도시 개발과 함께 농업용수 확보 차원에서 이뤄졌으며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영화정 또한 볼 수 있으며 수변풍경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 의미 또한 되새겨볼만 하다. 관련글
지구의 신대시대, 수원 칠보산 보물로 추측한 과학적 사실 그 진실은? '물고을' 수원(水原)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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